<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곽민지
비혼 라이프 가시화 팟캐스트 '비혼세'를 진행하는 곽민지 작가의 비혼 에세이
결혼하지 않은 삶은 결혼에 이르지 못한 것(미혼)이 아니며, 그저 또 다른 삶의 형태 중 하나임을 작가 특유의 유쾌한 어투로 얘기한다.
결혼도 출생도 줄어든 시대에 멋진 비혼 라이프를 사는 사람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만
그래도 비혼을 결혼에 이르지 못한 상태로 여기는 시선이 대다수인 건 맞을 테다.
하지만 결혼도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사람과 해야 행복한 것이지 사회의 시선과 압박 때문에 할 수는 없는 것.
결혼에 대한 좀 더 유연한 선택이 많아져 기혼자도 비혼자도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혼자 사는 삶도, 결혼해 사는 삶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책 중에서
모두가, 자신이 누구인지 자꾸 말해주면 좋겠다. 내가 나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느끼려면 내가 정상이라고 느끼는 범주에 포함되는 일보다는 세상에는 수억 개의 존재가 수억 개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걸 아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분홍색 머리를 하고 싶은데, 문 밖으로 나갔을 때 갈색 머리조차 없이 검은 머리들만 가득하다면 우리는 용기를 잃는다. 하지만 분홍색 머리는 없더라도, 분홍색 머리를 제외한 모든 것, 연두색 머리, 파란색 머리, 노란색 머리가 어깨를 펴고 거리를 활보하는 세상이라면 분홍색 머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될 테다. 결혼하지 않아도 좋고, 결혼해도 좋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택하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 33/370p
물론 혼자 빌라에서 사는 여성은 아파트보다 신경 써야 할 점이 많다. 차에 공개되어 있는 연락처는 내 핸드폰 번호가 아니라 특정 어플을 경유하는 안전 번호이고, 방범 고리도 이중으로 설치했다.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그중 건장한 남성이 있으면, 자주 시켜 먹던 치킨집에 주문을 해서 꼭 그 친구에게 받도록 한다. 혼자 사는 집이라고 각인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 때문이다. 택배도 가명의 남성 이름으로 받고, 24시간 거실 불은 켜져 있어서 외부에서 내가 건물로 들어가는 걸 보더라도 몇 호인지 단번에 알 수는 없게 해두었다. 피곤한 삶이지만, 내가 추구한 장점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저자가 아파트에서 빌라로 이사하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부분을 서술한 내용이지만, 혼자 사는 지인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공유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라이지만 여성이 안전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건 여전한 사실이다.
그러고 나니, 사람들은 다시 내 외모를 올려치느라 부산스러워진다.
...
그런데, 그냥 제 피부 얘기를 안 하면 안되는 건가요? 자꾸 실수하고 실패하잖아요. 그 실패의 원인이 내 피부에 대한 적절한 코멘트를 못 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뭐든 코멘트를 하기 때문이란 건 왜 모르는 거냐고요.
...
내 외모에 대해 뭐라도 말해야 한다는 그 강박은 어디에서 오는 거냐는 말이죠. 나의 까맘이 왜 그렇게 당신에게 중대하냐고요.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가 사랑이야.
―169/370p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냐는 대목에서 웃음 ㅎㅎ 그래, 굳이 상대방의 외모에 대해 코멘트할 필요가 없다. 외모에 대해 굳이 내려깎을 이유도 없지만 반대로 올려치려는 노력도 실패할 수 있다. Body Positive를 넘어 Body Neutral로 가자는 논의와도 비슷하다.
나의 까만 피부와 어울릴 줄 아는 '그러려니스트'들에게 사랑을 보낸다. 반대로 아직 그러려니 하지 못하고 경솔한 말을 하고 있을, 아직 남아 있는 내 경솔한 숨들을 떠올리며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나의 까만 피부로 어떻게든 대화를 시작하고 싶어 했던 당신에 대한 미움을 표현하고자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까만 여자인 내가 평생에 걸쳐 길러온 촉으로 인해 나를 향한 당신의 다른 사랑들을 지워버리고, 당신이 꺼낸 내 피부 이야기만을 가지고 당신과의 거리를 결정해버릴까 봐 털어놓는 이야기이다.
수억가지 살색 중 하나에 불과한 내 피부 톤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몸무게, 키, 피부색, 옷차림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생략할 줄 안다면 우리는 제한된 시간을 잘 써서 피부 밑의 내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몸은 까만 피부 밑에서 그런 낭만을 가지고 산다.
― 174/370p
내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도 "그럴 수 있어". 세상에 '그러려니스트'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저자는 피상적인 얘기를 줄이면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그다지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기 때문에 겉보기로 드러나는 모습들로 아이스브레이킹 하고, 습관적인 스몰토크만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 문득 생각이 든다.
삶에서 나를 성장시킨 경험은 비판이 아니라 받아들여짐에서 왔다.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서로만이 서로가 던지는 말의 뒤편을 믿고 앞으로 갈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삶의 형태와 결정이 달라고 서로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엔 의심이 들지 않는 사람, 나에게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할 줄 알고 그 중심에 언제나 나를 놓아주는 사람.
― 186/370p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특히 가족 같이 가깝고 서로에 대한 기대가 크며 내밀하게 엮여있는 관계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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