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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불편한 편의점>

by Juhn with h 2025. 2. 18.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머리가 복잡해 쉽게 읽히는 글을 좀 읽고 싶어 고른 책

쉽게 읽히는 문장과 만화처럼 개성있는 캐릭터들도 일단 책을 펼치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

책 중에서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요. 대체 왜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이상한 데 빠져서 인생을 낭비하죠? 주식이니 영화 제작이니 다 도박 같은 거 아닌가요? 대체 우리 아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죠? 예?"
   "그게... 아직 젊잖아요."
   "이제 서른이라고요. 서른! 인간 구실 못하는 서른 살 백수나 다름없다구요."
   "그런데 아들이랑 이야기는... 해봤어요?"
   "내 말 따위 듣지도 않아요. 진절머리 내고 피하죠. 수없이 붙잡고 얘기했다고요. 그런데 아들은 날 무시하고 이젠 피해요. 그 녀석에게 난 식모 아니면 하숙집 주인이나 다름없다고요!"
   "아들 말을 먼저... 들어보세요. 지금 보니까 아들이 마, 말을 안 듣는다고만 하는데... 선숙 씨도 아들 말을... 안 듣는 거 같아요."
   "뭐라고요?"
   "지금 내 말은 잘 들으시는데... 아들 말도 들어봐요. 왜... 회사를 그만뒀는지... 왜 주식을 했는지... 왜 영화를 했는지... 그런 거 말이에요."

(중략)

그제야 선숙은 자신이 한 번도 아들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따. 언제나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만 바랐지, 모범생으로 잘 지내던 아들이 어떤 고민과 곤란함으로 어머니가 깔아놓은 궤도에서 이탈했는지는 듣지 않았다. 언제나 아들의 탈선에 대해 따지기 바빴고, 그 이유 따위는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중략)

   "아들 갖다줘요."
   "아들을요? ... 왜?"
   "짜몽이 그러는데... 게임하면서... 삼각김밥... 먹기 좋대요. 아들 게임할 때... 줘요."

아들은 예전부터 삼각김밥을 좋아했다. 선숙이 편의점 일을 시작하자 폐기 삼각김밥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숙은 삼각김밥을 챙기지 않았다. 아들이 방에 박혀 게임하며 그걸 먹는 꼴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근데 김밥만 주면... 안 돼요. 편지... 같이 줘요."

 

이미 듣고 있다고 생각할 때, 실은 듣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실은 다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밤은 '참참참'이다. 지난 몇 개월간 선택해온 경만의 최적의 조합이 바로 이것이었다. 참깨라면과 참치김밥에 참이슬. 이것이 경만의 1선발이자 절대 후회하지 않을 하루의 마감이고 빈자의 혼술상 최고 가성비가 아닐 수 없었다.

 

술도 안 마시지만 참참참은 참을 수 없었다.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마치 지난 해를 더러운 옷인 듯 세탁기 옆에 던져놓고 새 옷을 입은 것처럼 굴었다.

 

기가 맥힌 표현이군.

 

   경만은 야외 테이블에 놓여 있는 옥수수수염차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그것을 집어 들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얼마죠?"
   "공짭니다."
   "왜죠?"
   "댁 드리려고... 놔둔 거니까요."
   "그러니까 왜죠?"
   "어... 전에 말씀드렸듯이... 옥수수수염차 이거 술만큼 중독성 있어... 매일 두 개 세 개 드시면... 우리 가게 매출에 좋잖아요. 그러니까... 미, 미끼상품인 거죠."
   사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믿을 수 없는 말이지만 믿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경만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대신 저거 좀... 사 가지 그러세요."
   경만은 사내가 가리키는 쪽을 돌아봤다. 계산대 바로 앞에 로아커라는 초콜릿이 진열되어 있었다. 
   "예, 그거요. 원 플러스 원. 청파동에서 제일 고운.. 그러니까... 아주 똑같이 고운 아이 둘이... 이거 좋아해요."
   사내는 계산을 하며 예의 그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경만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는 카드를 건네며 마른침을 삼켰다. 
   "걔들이 이 초콜릿을 엄청 좋아하는데... 언제부턴가 안 사고... 초, 초코우유 원 플러스 원만 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물었어요. 너희들 요새 이거... 끊었니?"
   "... 그래서요?"
   "큰앤지 작은앤지 암튼... 하나가 그러더라고요. 이제... 원 플러스 원 아니잖아요."
   (중략)
   "엄마가... 아빠 힘들게 돈 버니까... 돈 아껴 써야 한다고.. 편의점에 가면.. 원 플러스 원만 사라고... 그랬다는 거예요. 거참, 정말 아, 알뜰하다 싶었고... 애들이 참... 자알 컸다 싶었죠."
   "......"
   "어제부로 이 상품 다시... 원 플러스 원 됐으니까, 오늘은 아버지가 사 가시면... 되고, 내일부턴 딸들보고... 사러 오라고 하세요."
   경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본 사내는 헛웃음을 한번 짓더니 계산대 바닥을 통통 두드렸다. 경만은 코트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사내에게 목례르르 한 뒤 지갑을 열어 카드를 집어넣었다. 
   지갑 속에서 딸들이 원 플러스 원으로 웃고 있었다. 

 

   어릴 때 생각이 났다. 

비비탄 총을 사려고 몇날 며칠을 문방구에 들락거렸다. 제품상자를 꺼내 들고 바라보며 고민했다.

   '멋지다. 정말 갖고 싶어. 1만 5천원이면 정말 비싼데... 그런데 이게 정말 필요할까? 일단 생각해보자.'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시 상자를 제자리에 두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가 정말 갖고 싶어지면 엄마한테 어렵게 말을 꺼냈고, 용돈을 타서 신나게 문방구로 달려갔다.

   엄마, 아빠는 힘들지만 부지런히 일하셨다.

   그렇게 비비탄 총을 샀고, 미니카를 샀다. 고민 끝에 플라즈마 모터를 샀고, 트랙은 사지 않았다. 분식집에선 가끔 컵볶이나 피카츄 돈까스를 사먹었지만 만화책방은 가지 않았고, 문방구 앞 오락기는 지켜보는 데 만족했다. 

 

참참참 다음엔 옥수수수염차로 입가심을 하자.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안그래도 혹독한 세상, 어차피 에너지를 써야 한다면 서로 칼을 드는 것보단, 서로 친절한 편이 낫지 않은지.

 

   "저기 아르바이트 말일세, 나 같은 노인도 지원이 가능한가?"
   타깃이 눈빛을 빛내며 상체를 곽의 앞으로 쭉 뻗었다. 
   "물론이죠."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보겠네. 나 같은 무뚝뚝한 사람 그러니까 서비스 업종을 안 해본 사람도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나?"
   "어르신. (중략) 여기는 이빨 시리다고... 먹던 아이스크림 환불해 달라는... 제이에스 할머니 한 분 빼고는... 다들 순한 양 같은 손님들뿐이에요."
   "제이에스 할머니가 뭔가?"
   "제이에스... 진상이요. 암튼... 충분히 잘하실 수 있습니다."

 

JS가 되지 말자.

 

   정 작가가 마스크 위로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자신의 비극을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알찬 기운이 느껴졌다. 그건 꿈을 품고 사는 사람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새벽의 편의점에서 우리는 이야기했따. 그녀는 내 과거를 캐내기 위해 자신의 과거도 많이 털어놓았다. 나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절대 지치지 않는 그녀의 에너지가 부러웠다. 그래서 물었따. 대체 당신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이냐고? 그녀가 말했따. 인생은 원래 문제 해결의 연속이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풀어야 할 문제라면, 그나마 괜찮은 문제를 고르려고 노력할 따름이고요. 

 

어차피 풀어야 할 문제라면, 괜찮은 문제를 골라 풀어내자.

 

***

 

 

알고보니 굉장한 베스트셀러였던 <불편한 편의점>

표지 디자인과 컨셉을 따라한 책들이 우후죽순 쏟아질 정도로 센세이셔널했다고 한다.

 

캐릭터들이 가진 상처들이 우리가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법한 상처들이라서 

그들의 아픔이 보듬어질 때 내 아픔도 아물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따뜻한 작품이다.

세상 어딘가 있을 법한 이야기라기엔 너무 만화 같아 비현실적이지만

세상이 좀 더 만화처럼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세상 어딘가 있었으면 싶어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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