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부터 날씨와 함께 풀어졌던 정신줄을 동여맬 필요가 있었다. 12월 초가 방송대 기말시험이기 때문에 이제는 달려야 했다. 올 가을 놀이의 정점이 될 주왕산 프립을 방점으로 찍어두고 마음을 다잡았다.
1. 방송대 러닝(learning running)
진도가 밀려있었다. 하루에 두 강씩 달리고 기말고사는 2주에 걸쳐 치르면 딱 맞아떨어질 터였다. 프로그래밍 언어론, 클라우드 컴퓨팅까지는 무난하게 들었는데 선형대수가 발목을 잡았다. 아니, 방향 + 크기가 벡터인 줄은 알았는데 벡터의 정의를 확장한다구요? 이제 함수도 벡터라구요? 내적에 외적에, 벡터공간은 또 뭐고, 기저에 차원에... 핵과 상은 어디에 써먹고 선형변환은 왜 하는 거죠? 끊임 없이 새로운 추상적 개념이 쏟아졌다. 하루에 한 강도 못 나갈 때가 있었다. 다행히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다시 속도가 붙었고 기말 한 주 전부터는 문제 풀이에 들어갈 수 있었다.
2. 주왕산
가을에 단 한 가지 지켜내고 싶은 게 있었다면 단풍 산행이었다. 산은 뭐니뭐니해도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데 그 중에서도 단풍 시즌이 백미다. 가을도 짧디 짧은데 단풍 시즌의 '절정'은 정말 한 주 밖에 안 된다. 한 주 차이로 아직 물이 덜 들어 있기도 하고, 이미 잎이 떨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어느 산의 절정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기회는 일 년에 한 번 뿐이다. 한 해의 단풍 시즌에 갈 수 있는 산이라고 해봐야 몇 군데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소중한가. 적어도 이 시즌만큼은 놓칠 수 없다.
어느 산에 갈까 하다가 주왕산의 봉우리 모양에 꽂혀 설레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그 비경을 마주했을 때의 감회는 여기에 풀어놓기에는 너무 긴 얘기가 될 것 같아 짧게 줄인다. 그냥 사람들이 왜 가을이면 주왕산, 주왕산 하는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3. 간송미술관
일년에 두 번 열리는 간송미술관도 아는 사람만 아는 보물 같은 전시다. 홀로 관람을 마치고 나가려던 차에 도슨트 같은 분이 지인처럼 보이는 분들을 모시고 들어와 전시 설명을 시작했다. 전시관 관계자인가 하고 데스크에 여쭤보니 놀랍게도 관장님이셨다.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손자이신 전인건 선생님. 멀찍이서 조심스레 훔쳐 듣다가 나중엔 그냥 따라다니며 들었다. 오디오 해설에는 담겨있지 않은 비화들과 간송께서 해당 작품을 입수하시게 된 이야기까지 더해져 작품들이 새롭게 보였다. 각 그림에 숨겨진 디테일들도 하나하나 짚어주셔서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관장님의 설명이 끝났을 때에는 이미 폐관 시간이 지나 있었다. 설명 감사히 잘 들었다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아, 이런 경험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가 함께 관람 후 이야기를 나눌 만큼 취향까지 같기란 쉽지 않겠지. 뜻이 통하는 벗이 간절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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